→구룡포 과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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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거친 파도와 함께 삶을 일궈온 구룡포 사람들은 꽁치가
많이 잡히는 겨울철이면 한층 바빠진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시대 장기현감이 고을을 순찰하던 중
용주리를 지날 때 별안간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휘몰아쳐 급히 민가로 대피했는데 바다에서 열마리 용이
승천하다 한마리는 떨어지고 아홉마리만 하늘로 올랐다’하여
구룡포라 한다.
예부터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구룡포는 연근해 어업이 발달하여
경북 동해안 어장의 60% 이상을 형성한다. 항구는 속초항이
크지만 판매량은 구룡포항이 많다.
99년 매출액을 6백80억원으로 예상하니 가히 동해안 항구중
최대라 할 수 있다. 70년대는 꽁치가 유명했고 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오징어가 호황이다. 그런데 오징어나 대게라 하면
흔히 다른 고장 이름을 먼저 떠올린다.
잡기는 구룡포 사람들이 잡아도 다른 지방 이름으로 유명해
졌다고 이곳 사람들은 투덜댄다. 오징어는 울릉도 사람들이
사가서 울릉도 오징어가 되고, 대게는 영덕 사람들의 손을
거쳐 영덕 대게가 되고. 꽁치는 또 그렇게 포항 과메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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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포항 과메기보다 구룡포 과메기가 맛이 좋다고 덕장에 널기 전
찬물에 씻는다. 유명해지면서 제 이름을 찾았다고 좋아한다.
3∼4년 전부터 타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과메기를 만드느라 구룡포의 겨울은
여느 때보다 한층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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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짚으로 엮어 차가운 겨울바람에 보름 정도,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으면서 발효 건 특히 구룡포 과메기의 맛은 차갑고 건조한 바닷바람에 있다. 이곳은
겨울에는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데 지형적으로 구룡포 북서쪽에는 포항 앞바다인 영일만이
있고 장기곶을 이루는 완만한 능선이 있다.
백두대간을 넘어온 겨울철 북서풍은 영일만을 거치면서 습기를 머금고 다시 한번 산을
넘어오면서 습기를 넘겨주어 건조해지고 차가워진다. 말하자면 구룡포의 겨울에는 산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이 건조한 북서풍이 과메기를 꼬들꼬들하게 말려 주며 맛을 내 주는 것이다. 동지섣달 늦은 겨울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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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미역에 말아 초고추장을 찍어 소주 한잔 곁들여 먹는 과메기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맛에 겨울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른다. 타지 사람들은 생물로 말린 꽁치에서
비린내가 날 것이라 말하지만 생각만으로 말했다가는 야단맞기
십상이다.
구룡포에서 7년째 덕장을 하는 김일선씨는 “머슨 비린내?
묵어 봐라. 머슨 비린내가 나는 과메기는 얼음이 어는 것을 보고
넌다. 그래야 건조도 좋고 비린내도 안 나는 기다”라며 모르고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투다.
제대로 말린 것은 비린내가 안난다는 것이다.
구룡포 산세의 편안함은 그대로 이곳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으로
느낄 수 있다.
장날 어물가게 할머니 사진을 찍는데 “거렁뱅이 같은 얼굴은 와
찍노” 하면서도 “일루 와 이거나 묵으라” 하면서 건네는 인심에
같이 앉아 도란도란 세상 사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길을 떠나 얻는 것이 있다면 이런 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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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메기란?
청정해역 동해에서 갓 잡은 신선한 꽁치를 섭씨 영하 10도의 냉동상태로 두었다가
12월부터 바깥에 내다 걸어 자연상태에서 냉동과 해동을 거듭하여 말린것으로 옛날
궁중의 진상으로 올렸을 만큼 맛이 좋고 영양가가 풍부한 식품이다.

→ 과메기의 재료 : 꽁치, 청어

→ 진공 포장 과메기(사철용)
겨울철 특미 과메기를 진공상태로 보관하여 맛을 그대로 보존하여 사시사철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과메기를 개발한 것입니다.맛을 보시고 선택하십시오.

→ 맛있게 먹는법
적당히 말려진 과메기의 뼈와 껍질을 잘 벗겨 생미역과 실파 등을 곁들여 초고추장에 발라
한잔의 소주와 함께 드신다면 그이상의 안주가 없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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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영양가
고단백질 식품으로 불포화 지방산인 EPA와
DHA 함량이 높아 혈관 확장작용등 성인병
예방에 뛰어나며 맛 또한 일품입니다.
→ 과메기의 어원
청어를 말려서 만들었다는 뜻인 관목에서
유래 하고 있으며 관목의 ‘목’이 포항지방의
방언으로 “메기” 라고 발음되어 관목이
“관메기”로 변하고 다시 “ㄴ”이 탈락 되면서
“과메기” 로 굳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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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메기의 유래
유래 1: 과메기는 영일만 근해에서 잡히는
대표적 어종인 청어를 말려 만든 이 고장 특유의
전통적인 토산품 즉 건강식품으로 그 유래와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고장을
중심으로 한다 동해안 지역에 청어가 예로부터
오랫동안 잡혀왔으나 조선시대 때 進貢品으로
선정된 관련 식품은 연일과 장기 두 곳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1832년과 1871년의
<읍지>에 다 같이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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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말에 의하면, 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반드시 맨 먼저 여기서 잡힌다고 하는 데 먼저
나라에 進獻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이를 잡았다. 잡히는 것이 많고 적음으로 그 해(오는
해 겨울을 가르킴)의 풍흉을 짐작했다」 (<동국여지승람><영일현>注津條)라는 기록은
영일만 앞바다에 청어가 많이 잡혀 형산강 하류에까지 올라왔음을 지적해 주는 훌륭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동해안의 청어잡이가 이 고장의 청어잡이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고장과 청어 사이에 이루어진 특별한 역사적 사연을 말해주는 史話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進貢品이 바로 청어(비웃)을 말려서 만든 貫目(관매기→과매기)이다. 말린 청어
또는 건청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나 만드는 과정에서 특별히 붙여진 이름으로 이해된다.
貫目은 오늘날 이 고장에서 ‘과매기’라고 부르는 이 곳 주민의 애호를 받고 있는 건 식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름철의 ‘포항물회’와 함께 포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겨울철의 향토식품이 되고 있다. 식품으로의 청어는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와서 남겨진
기록이 적지 않은 것 같다. <屠門大嚼> (1611) 이 청어(비웃)에 관한 설명을 보면,
「北道에서 나는 것은 外皮가 검고 뱃속이 붉으며, 全羅道에서 잡히는 것은 慶尙道의 것보다
작고, 경주 근해에서는 2월에야 잡히고 맛이 극히 좋다. 예전에는 천한 물고기더니 고려
말년에는 쌀 한 되에 마흔 마리만 줌으로 <牧인集>에서 李穡이 한탄하기를 “세상이 어지럽고
흉년이 들어 百物이 凋殘함으로 청어마져 드물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李瀷의
<星湖僿說>(1763년경)에는 청어에 관한 설명을 「지금 생산되는 청어는 옛날에도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마다 가을철이 되면 함경도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형태가
아주 크게 생겼다. 추운 겨울이 되면 慶尙道에서 생산되고, 봄이 되면 차츰 전라도와
충청도로 옮겨 갔다. 봄과 여름 사이에는 황해도에서 생산되는데 차츰, 서쪽으로 옮겨감에
따라 점점 잘아져서 친해지기 때문에 사람마다 먹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였다. 이와같이
<성호사설>시대의 청어는 서해의 청어이다. 이 서해 청어를 가리켜 서울 지방에서는
‘비웃’이라 부른다. <名物紀略>(1870년경)에 의하면, -청어는 값싸고 맛이 있어 서울의
가난한 선비들이 작 먹는 고기-라고 지적하고 어로 표기하였다. 이렇듯 선비들을 살찌개
하는 물고기이니 ‘비웃’이 된 것이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많이 잡히던 영일만 동해 의 청어가 근래에 희귀해져서, 오늘날
시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것이 북태평양 원양어선이 잡아오는 청어로서 맛이 훨씬 떨어진다.
貫目은 음력 동짓달 추운 겨울에 잡힌 청어를 배를 따지도 않고 소금도 치지 않고 그냥
온마리들을 엮어 그늘진 곳에서 겨울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말려 만드는 것인데, 곧
냉훈법으로 얼렸다 녹혔다를 반복해서 얼말린(냉결건조) 식품이다. 이같은 방법은 부엌은
밤에 차고 밥짓는 동안은 열과 연기로 따뜻해진다. 아궁이에 송엽을 낼 때 부엌 안은 연기로
자욱하게 되고 자연 통풍의 필요가 생긴다. 채광을 겸한 그 통기구가 추녀 바로 아래에다
뚫은 살창이다. 그곳이 바로 청어의 건조장, 비웃 몇 두름을 겨우내 그 설창에 걸어두면
냉결건조 되고 송엽의 향연으로 훈제되어 이른 봄에는 빳빳한 貫目이 되는 것이다.
조상의 味覺과 삶의 지혜가 한층 돋보이는 장면이다. 李圭景의 <五州行文長箋散稿>에도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烟貫目이라” 썼고, <음식디미방>
(1670년경)에 “말린 고기를 오래 두려면 연기를 띄어 말리면 고기에 벌레 안난다”고 한 것이
이러하나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閨閤叢書>(1815년경)에 “비웃 말린 것을
세상에서 흔히들 貫目이라 하니 잘못 부름이요. 정작 관목은 비웃을 들어 비추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며 그 맛이 기이하다”고 한 것과
<笑天笑地>에 「동해안 지방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해안가를
걸어가다가 민가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파오고 있었는데, 해변가를 낀 언덕위의 나무에
고기의 눈이 나무가지에 끼인 채로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찢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았었다. 과거를 보고 내려온 그 선비는 집에서 겨울마다 생선 중 청어나 꽁치를
그 방법대로 말려 먹었다」는 기록은 관목의 명칭에 대한 의미를 밝혀 주는 것으로
이채롭다. 다른 지방에서도 청어가 많이 잡혔으나 유독 이 고장과 장기 지방의 청어가
관목으로 진상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앞서<성호사설>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청어의 맛이 그 질이나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경상도 동해안 특히 영일만 연안에서 잡히는 경울 청어가 최상품의 것이 된 것이다.
이러한 청어는 다른 생선과는 달리 특이한 불포화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어서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특효가 있는 優良 수산식품으로 오늘날 판명되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청어가 잘 잡히기 않기 때문에 그 대용으로 꽁치를 얼말려 과매기를 만들어 먹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대용 식품이 옛날 청어관목 못지 않는 맛을 내며 인기있는 식품이
되어가고 잇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이 고장 특유의 역사적 지혜와 산물로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공치도 핵산이 많이 함유된 건강에 유익한 수산식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맛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역시 겨울의 꽁치로
만든 과메기는 청어 과메기 이후 이 고장의 토산식품으로 손색이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장기 지방에서는 과메기를 만들지 않고, 유일하게 구룡포 지방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여 전통적 향토식품으로 오늘에 계승,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구룡포의 과메기는
더욱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유래 2: 동해에는 예로부터 청어잡이가 활발해 겨우내 잡힌 청어를 냉훈법이란 독특한
방법으로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건조 시킨것이 과메기이며 청어과메기의 건조장은
농가부엌의 살창이라는것이었다.농촌에서는 밥을 지을때 솔가지를 많이 때는데 이
살창은 솔가지를 땔때 빠져 나가게 하는 역 할 을 했다. 이 살창에 청어를 걸어두면
적당한외풍으로 자연스럽게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이반복되고 살창으로 들어오는
송엽향까지 첨향되었다고 하며 이렇게 완성된 청어 과메기는 궁중까지 진상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꽁치를 그냥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두어 자연 건조시키는 것과는 달리
냉훈법에는 조상의 슬기와 지혜의 한 단면을 엿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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